서울총장포럼

마이클 로스 웨슬리언대 총장이 겨냥한 『대학의 배신』


“직업훈련이 대학개혁? 개혁의 수혜자는 따로 있다”

마이클 로스 웨슬리언대 총장이 겨냥한 『대학의 배신


이 책의 원제는 ‘대학 너머에(Beyond the University)’다. 얌전하고 무난해 보이는 원제가 한국어판에 와선 돌변했다. ‘대학의 배신’ 대학이 어떤 배신을 하고 있단 말인가. 원제와 한국어판 제목 사이에 고개가 갸웃했지만, 책을 열어 몇 장을 읽어내려갔다. 마이클 로스 웨슬리언대 총장(사진)은 책 전반에 걸쳐 대학의 교양교육 필요성을 역설하기 위해 중세대학부터 근현대 미국대학의 사례까지 충실히 연결짓고 있었다. 그런데 그 흐름이 사뭇 ‘배신의 역사’와 같다.


▲ 마이클 로스 웨슬리언대 총장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어판 제목인 ‘대학의 배신’은 이를 테면 대학의 자기배반 혹은 자기기만을 뜻한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로스 총장이 ‘대학 너머에’라는 미래지향의 제목에 담으려 했던 건 현실을 오롯이 진단해오지 못한 대학을 겨냥한 질책이지 않을까.

우선 로스 총장은 격변하는 사회 속에서 대학의 본질과 역할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학의 본질이라는 말은 자칫 고루하고 상투적인 교육공학적 수사에 불과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그가 지적하는 대학의 본질은 인간과 사회를 자유롭게 만드는 교육기관으로서 ‘자격’을 뜻한다. 이른바 ‘교육개혁가’들이 흔히 말하는 “전문화된 교육을 통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논리와는 정면충돌도 주저하지 않는다.

“오래 전부터 자칭 교육개혁가들은 대학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주장하기 위해 도구주의에 입각한 근거를 동원했다. 오늘날 많은 보수학자들은 저임금 노동에 종사할 이들이 어째서 고등학교 이상의 교육을 받아야 하며 왜 굳이 철학이나 문학, 역사를 배울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이런 제한된 도구주의적 관점으로만 보면, 학생은 원하는 지식을 골라 담은 ‘재생목록’을 구입하는 소비자일 뿐이다.”

로스 총장이 주장하는 대학의 두 가지 책무는 ‘지식의 보고’와 ‘비판적 사고의 보루’다. 그는 “대학은 연구를 통해 지식을 생산하는 창조성, 그리고 그것을 많은 사람과 나누기 위한 권위를 갖춘 곳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일반적 통념에 도전하는 비판적 사고를 보호하는 곳이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두 가지 책무 사이엔 긍정적 긴장감이 존재하는데 일부 교육개혁가들처럼 단지 먹고 사는 문제와 대학교육을 연결지으려는 유혹에 빠지면 이 긴장감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덧붙였다.

“우리는 대학교육을 편협한 직업훈련으로 대체함으로써 이 긴장(지식과 비판적 사고)을 해소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이 긴장감이야말로 대학을 살아 있는 곳으로 만들어주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 대학이 고등교육기관이라는 이름에 걸맞으려면 얼마나 ‘고등한’ 교육을 제공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연구중심대학’이라는 현대 대학의 모델을 이끌어온 미국 대학의 초창기 총장들을 호명했다. 40년간 하버드대 수장을 맡았던 찰스 엘리엇 총장, 존스홉킨스대 초대총장 대니얼 길먼, 프린스턴대의 제임스 맥코시 총장, 코넬대 설립자 에즈라 코넬 등이 보조출연해 이들이 저마다의 상황에서 어떤 정책결정을 내렸는지 두루 살핀다.

이를 통해 로스 총장은 저성장 일로의 경제위기 속에도 첨단과학과 인공지능이 가속도를 내고 있는 혼돈의 시대인 지금, 대학이 내딛어야 할 연구와 교육의 방향이 무엇인지 제시한다. 더불어 소수의 성공사례를 통해 대학교육을 오로지 돈 잘 버는 취업용 교육(수단)으로 가져가려는 시도를 강하게 비판한다.

 

▲ 『대학의 배신(원제 Beyond the University)』

(오찬호 해제, 최다인 옮김, 지식프레임, 2016)

 

“오늘날 사람들이 존경하는 인물상은 고도의 집중력과 기발한 아이디어로 벤처기업을 일으키고 투자자를 끌어모으는 영웅적 기업가로 바뀌었다. 공교롭게도 혁신을 상징하는 미국 기업인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는 둘 다 대학을 중도에 그만뒀다. 두 사람이 다양한 분야에 걸친 폭넓은 지식에 관해 뭐라고 말했든, 이들을 우러르는 사람들은 ‘자기 아이디어로 돈을 버는 데 필요한 것만 알면 된다’는 식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교육을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면 재능있는 소수는 혁신가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 외의 다수는 소비자로 남게 된다. 사람들은 시장에서 성공하는 것만을 중요하게 여기게 될 뿐이다. (중략) 교양교육의 뿌리는 단순히 직업교육의 반대 개념으로 취급하기엔 깊고 단단하다. 우리는 이 뿌리를 되살려 교양교육이란 무엇이며 왜 중요한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대학교육을 발판으로 혁신가로 거듭날 것이냐, 소비자로 남을 것이냐.’ 로스 총장은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고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길을 적극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하려면 교양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책이 던져주는 가장 흥미로운 시사점이자 결론은 의외로 책의 가장 첫 장인 ‘서문’에 나온다. 교육혁신가를 자처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교수들과 정부 정책담당자를 겨냥한 듯한 쓴소리다.

“사람들을 ‘소비자’로, 혹은 재능있는 사람이라면 ‘혁신가’로 키우는 교육이면 충분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시장상황이 변하면 이렇게 제한된 의미의 훈련만 받은 이들은 밀려날 수밖에 없다. 반면 시장 동향을 좌지우지하는 ‘권력자’들은 대개 전문기술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아도 되며, 그러므로 아무 불이익도 받지 않는다. 그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며 ‘교육개혁’이라는 허울로 특권과 불평등을 유지하고자 하는 욕망을 그럴싸하게 포장한다. 우리는 이런 자들을 항상 조심해야 한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기사출처 _ 교수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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