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총장포럼

최근 5년 대학 내 자살 ‘월 1명’ 꼴, 근본대책 시급하다






‘취업’에 지친 청년들 ‘무력감’ 느낀다
심신 미약·우울증이 死因의 전부일까?

졸업 시즌을 지난 대학가에 우울한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사회에 진출해야 하는 대학생들의 잇딴 좌절과 그에 따른 극단적 선택이 늘고 있는 것이다. 자살충동을 넘어 실제 자살에 이르는 ‘삶의 부정(否定)’마저 확산되고 있어 우려된다.



지난 2014년 경기도의 한 사립대 인문학부를 졸업한 A씨(29세, 남)는 평소 쾌활한 성격으로, 대학 선후배들과 학과교수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아왔다. 하지만 그는 지난 3년간 100군데 이상 지원하고도 취업하지 못해 힘든 날을 보내고 있다. 빨리 취업해서 주변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도 부담이지만, 자신의 능력과 재능에 대한 믿음이 있다보니 바짝 조바심이 인다.

그런 그도 도서관에서 온종일 취업 준비를 하고 자취방에 돌아오면 문득 불길한 생각이 스칠 때가 있다. 일종의 ‘자살 충동’이다. A씨는 화들짝 놀라 다급히 온라인 게임에 접속한다. 그가 우연찮게 찾아낸 그만의 응급조치다. 자정 전후 워낙 늦은 시각이라 지인과 속내를 나눌 틈이 없는 사각지대를 A씨는 온라인 채널로 버텨낸다. 온라인 가상세계는 언제든 다른 사람과 어울릴 수 있고, 굳이 속내를 털어놓지 않더라도 게임·채팅 등 함께 할 ‘거리’가 있어서 위급한 고비(!)를 넘길 수 있다.

활동적이고 사교적이며 밤새워 시사토론을 즐기기도 하는 A씨지만, 그는 모든 처방(?)이 일순간 무력해지는 아찔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자취방에 돌아와 하루를 정리하던 그에게 갑작스런 ‘허무와 허탈, 무력감’이 찾아든 것이다.

“갑자기 ‘오늘 나 뭐했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무망감이 엄습했어요. 그리곤 ‘힘들다’는 생각밖에,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죠. 여기에 ‘이런 마음을 이겨내지 못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겹치니….”

‘상시적 불안’이 중첩되다가 순간적으로 하나의 부정적인 생각에 휩쓸려 버린 것이다. A씨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하다고 털어놨다.

A씨보다 더 안타까운 상황은 지난 2일 밤 부산에서 일어났다. 이 지역 한 대학의 인문학부 소속 여대생 B씨(22세)가 취업이 되지 않는 현실을 비관해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지고 말았다. B씨는 사고 직전 친구들에게 ‘영원히 안녕’이라는 문자메시지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유가족들의 진술을 빌려 “B씨가 평소 취업이 되지 않는 것에 비관했다”고 전했다.

2012년 대전의 한 사립대 서예학과 교수가 자택에서 술을 마시다 목을 맨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가족과 경찰은 ‘취업 스트레스’를 사인으로 꼽았다. 정부 정책에 따라 제자들을 취업시켜야 하는 데 따른 스트레스가 주요인이었을 거라는 추측이다.

앞선 2011년에는 대전의 한 대학에서 ‘로봇 영재’로 불리던 학생이 학업 경쟁에 뒤처진 데 따른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사고 직후 학생과 교수 5명이 잇따라 안타까운 죽음을 선택했다. 같은 해 서울의 한 예술대학에서는 5개월만에 4명의 예술학도가 성과 위주의 교육체계와 취업 경쟁을 등지고 세상을 떠났다.

이처럼 자살은 베르테르 효과(모방연쇄자살) 때문에 주변인의 사고에 대해 死因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도, 깊숙이 들어가 들여다보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최근 대학교수·연구자, 학생들의 자살사건이 잇따르고 있지만 짐짓 덤덤히 넘기려는 인식도 널리 퍼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최근 5년간 대학 안에서만 6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운명을 달리했다.

지난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대학별 자살자 현황’에 따르면 2011년 15명, 2014년 18명 등 지난해 6월말까지 연간 13.2명이 자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최근 5년간 전국 대학에서 매달 1명꼴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김 의원은 △우울증 △학업·진로 문제 △가정사 △처지비관 △이성·교우 관계 △질병 등을 사인으로 꼽았다. 김 의원은 “자살시도자가 끝내 자살할 확률이 일반인의 25배에 달하는 것을 감안해, 정부가 생애주기별로 다각적이고 실효성 있는 예방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극심한 경쟁이 낳은 부작용

대학 구성원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데엔 취업난과 평가 위주의 교육정책 등 구조적인 문제가 장기간 지속된 데 따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대학가에 뿌리 깊이 박힌 ‘경쟁 구조’는 전국 대학이 공통의 고민에 빠져 있는 탓에 변화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예컨대 학생들은 ‘청년 실업’에, 교수·연구자들은 ‘업적평가’에, 대학은 ‘재정 위기’를 겪고 있다. 언제 어느 때라도 누군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해도 이를 챙겨볼 여유가 없는 것이다.

끊임없는 경쟁을 통해 상대적 우열을 가려내는 평가 문화의 위험성은 수도 없이 지적돼 왔다. 자살예방단체인 (사)나봄문화 이사장을 겸하고 있는 박민용 협성대 총장도 최근 대학 구성원들의 잇따른 자살사건이 극심한 경쟁시스템이 교육기관에 도입된 데 따른 부작용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박 총장은 학생·교수·연구자를 막론하고 지금 대학은 상대적 비교·판단에 의해 ‘상대적 빈곤’에 빠진 상태라고 진단했다. 그는 “1등은 뛰어가고 2등이 쫓아가는데, 1등은 혼자 달리면 되는 게 아니라 뒤쫓아오는 2등을 내치면서 달려가야 한다”며“이런 구조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고려(혹은 배려)라는 인식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대학생들의 자살생각과 관련, 극심한 경쟁이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지난해 심리학회지에 발표된 「대학생 자살생각 관련 변인에 대한 메타분석」(안세영 외 2명, 제주대 교육학과)이다. 최보영 제주대 교수(교육대학원) 등이 지난 10년의 선행연구를 바탕으로 메타분석을 한 결과 ‘우울’과 ‘부정적 정서’ ‘무망감’ ‘취업스트레스’등이 대학생들의 자살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요인으로 도출됐다.

연구진은 “대학생들이 좌절과 결핍, 슬픔과 고통에 대한 수용성이 상대적으로 낮아, 작은 좌절에도 정서적으로 취약하다”며 “복잡한 사회적 상황에 처하면 감당하기 어려움으로 인한 도피책으로 자살을 고려하거나 충동적으로 자살을 시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우울’을 유발하는 요인과 억제할수 있는 요인을 탐색해 예방대책을 세울 것을 당부했다. 우울과 스트레스, 세상을 향한 부정적 생각 등을 조장하는 주요인이 상대적 비교에서 비롯한 심리적 불안정이라면, 기존의 평가 중심의 사고를 점진적으로 변화시킬 필요성을 환기할 수 있다.

자살의 원인과 방지책을 철학적으로 접근해온 정성관 인하대 교수(철학)는 지난해 10월 발표한 논문 「칸트의 자살문제」(대동철학회, 2015)에서 칸트가 제시한 자살 해법을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논문에 따르면,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자살과 같은 도덕적 악에 대항하기엔 역부족이고, 개인의 악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아무리 애쓴다고 해도, 다시 악에 굴복할 위험이 크다. 따라서 칸트는 “유한한 이성적 존재들이 통합된 힘으로 근본 악에 대항하고, 지속적으로 도덕성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 인간이 자신과 타인을 언제나 ‘목적’으로 대하는 사회(도덕적 사회 혹은 도덕적 공동체)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

누구나 언제든 ‘선택지’가 소리 없이 날아들 수 있는 팍팍한 현실이다. 그때마다 직면한 상황을 온전히 자기 의지로 이겨낼 수 없다는 것을 주지하고, 주위 사람들과 함께 해결책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 칸트의 조언이자 자살예방 전문가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기사출처_ 교수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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